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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나님 은혜로 채워진 의사인생 60년…목사로, 방송인∙시인으로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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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3-0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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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박사면서 목사인 윤세웅박사<사진>가 올해로 의사인생 60주년을 맞았다. 그는 주의 은혜였으며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회고했다. 사진은 윤세웅박사가 이사장 겸 사장으로 있는 미주기독교방송국(KCBN) 녹음실. 



의사인생 60주년 맞은 의학박사 윤세웅 목사


“정말 열심히 살았다…모두 하나님 은혜다”

서울의대 졸업 후 의사면허 취득(1964)

도미(1971)후에 외과∙비뇨기과 전문의로

미국 최고 외과∙비뇨기과 의사 선정 '영예'

미국법의학회∙기독의사회 창립 이끌어


“절대 울려서는 않되는 비상전화 벨 소리를 들었어요. 그리곤 얼마되지 않아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피흘리는 제복입은 한 사람을 업고 빨리 수술하라고 윽박지르더라구요. 손에는 권총이 있었고, 여러명의 경찰과 군인들로 북새통 그 자체였어요. 뭔가 대단히 큰 일이 벌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1968년 1월21일 우리나라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은 이른바 김신조 사건 당시 국립경찰병원의 상황이다. 아직 외과 전문의 과정에 있던 윤세웅 박사는 심장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던 기억이 또렷하다. 


피를 봐야하는 외과의사 전문의 과정에 있던 청년 윤세웅에게는 언제고 잊을 수 없는 생생한 기억이다. 피를 흘리며 실려온 제복입은 사람은 종로경찰서장이었다. 결국 그는 사망자 명단에 올랐다. 


국립경찰병원서 겪은 김신조 사태의 기억


윤세웅박사(83세)에게 올해 2024년은 특별하다. 의사 인생을 살기 시작한 지 꼭 60주년이다. 당시 출생한 아이가 올해 환갑이 되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지나고 보니 벌써 이렇게 됐구나 하는 마음은 들지만, 참 많은 일을 했고,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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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경으로 추정되는 시기, 국립경찰병원에서 진료하는 의사 윤세웅<사진>



윤세웅박사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소정의 수련과정을 거친 후 대한민국 의사면허를 취득한 1964년, 그는 국립경찰병원에서 외과 전문의 과정에 있었고, 김신조 1.21사태를 직접 경험한 몇 않되는 의료진이다. 


이듬해인 1969년은 김신조 사태 여파로 군 안보가 더욱 튼튼하게 재정비한 시기로 그 때 육군 군의관(외과 전문의)으로 복무했다. 이후 71년도에는 서울동부시립병원 외과장으로 많은 환자를 수술하고 치료하는 일을 반복했다. 


서울시동부시립병원에서는 목이 아프다는 탈렌트 최불암 씨 그리고 섹소폰 연주가연서 작곡가 이봉조 씨를 치료했던 경험도 있다. 또 지금은 고인이 된 원로 영화배우 김희갑 씨를 치료해 주고 선물로 차 한 대를 받았다. 물론 김희갑 씨가 타던 차로 ‘빨강색 폭스바겐’. 그는 어울리지 않아 곧 팔았다고. 정치인들이나 기업총수, 인기 연예인들만 드나들었던 현재 서울 광장동에 있는 극장식 연회장 ‘워커힐’에서 ‘관리 의사’도 했다고 한다. 


가까이 지낸 약제과장은 육영수 여사 오빠


그는 국립경찰병원에 있을 때 육영수 여사 친오빠 육완수 씨와는 매우 친하게 지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자신의 방 맞은편에 이 병원 약제과장인 그의 방이 있어서 비교적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윤세웅박사는 하지만, 당시 불교신자인 그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게 무척 안타깝다고 했다. 청와대 뒷쪽에 불상을 세울 정도였는데, 예수님을 전하지 못한게 6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슴이 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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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돌연 미국으로 들어온 윤세웅 박사<사진>는 비뇨기과 전문의로 영역을 확장하고, 파일렛 공식 검진 의무관으로, 법의학 전문의로, 한미의학신문 발행인으로 전문분야를 대폭 확장시킨다. 



윤세웅박사는 박정희 대통령 오른팔인 차지철 경호실장 매제이다. 그런 그가 격동의 현대사 한복판에서 돌연 미국행을 선택했다. 


윤세웅박사가 미국에 온 계기는 표면적으로 대한의학협회 대표(외과의사)로 미국의학협회 초청을 받아 미국에 온 것으로 돼 있지만 사실은 100% 자신의 의지였다. 한국의 의료수준을 미국에 소개하고 픈 욕심 그리고 풍부한 의료지원 아래 맘껏 연구하고 픈 욕심이 ‘반반’ 윤세웅 박사의 마음을 흔들었다. 


뉴욕교협 설립멤버였던 선친도 의사


의사였던 아버지(고 윤원중 목사)의 결사반대를 예견한 그는, 아버지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하고, 미국의학협회 초청을 명분삼아 여권과 비자를 준비해 미국에 들어갔다. 1971년의 일이다. 


하지만 1980년대 뉴욕에 이민 온 윤박사 아버지는 10여년 전 자신의 아들결정을 존중했다. 선친은 뉴욕교협 설립에 힘을 보태며 초대회장 한영교목사와 함께 한인돌봄과 양육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윤세웅박사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직도 생각나요. 아버님과 한영교 목사님이 서로 회장하라며 권하고 양보하던 대화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경쟁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하하하, 많이 변했죠.”


윤세웅박사는 시카고 Cook County Hospital 의사(1972)로, 뉴욕과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1974)의사로, 뉴욕 Parson병원 비뇨기과 과장 및 병원장(1982)으로 쉼없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지역에서 고치고 치료하고 회복시키는데 최선을 다했다. 


포레스트힐∙엘름허스트에서만 의술 40년


그는 비뇨기과 전문의(1978)자격을 미국에서 취득했다. 뉴욕 아인슈타인병원에서 비뇨기과 레지던트와 주치의로, 그리고 컬럼비아대학병원에서도 주치의로 일했다. 뭐든 대충하는 법이 없다. 자세히 제대로 하는 것이 몸에 밴 그다. 퀸즈 포레스트힐과 엘름허스트 두 곳에서 장소를 옮기지 않은채 ‘40년간 꾸준히’ ‘의료사고 없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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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신학대학교 총장인 윤세웅박사<사진>는 보수신학을 철저히 옹호하며 성경의 진리를 훼손하는 세력을 엄단한다고 말했다. 



비뇨기과 주치의가 된 1978년, 그는 미국법의학 전문의로서 자격도 취득했다. 법의학회 창립회원이기도 하다. 미국 의학계는 이런 윤세웅박사를 주목하고 1995년 '미국 최고 비뇨기과 및 미국 최고 외과의사'로 선정했다. 소수이민자 중 하나인 한인으로서 미국 주류 엘리트그룹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최고 영예를 수여받은 것이다. 


미국 항공의무관 자격취득…파일럿 자격증까지


이 뿐만이 아니다. 비행기 조종사(파일럿)의 건강체크 전담 의사로서 자격도 얻었다. 이른바 미국 교통청 항공의무관(AME)자격. 이를 위해 미국 비행기조종 면허도 땄다. ‘한미의학신문’을 창간한 발행인이기도 하고, 미국기독의사회를 창립하고 회장을 맡았다. 


60년 의사인생을 돌아본 그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회고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은총의 결과라는 고백도 했다. 의사 윤세웅박사는, 목사면서 신학자이다. 또 미주기독교방송국(KCBN) 이사장 겸 사장이다. 퀸즈 우드사이드 술집건물을 매입해 교회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뉴욕제일교회’의 출발이다. 벌써 47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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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교계 각종 집회와 기념식에 초청받는 윤세웅 박사<사진>는 철저한 성경진리의 수호와 바른신앙 자세를 강조하며 하나님을 소망하는 즐거움을 전하곤 한다. 미주한인여성목회자연합회 행사에서 축사하고 있다. 



“아직까지 훼이스신학교 소유주는 나”


1989년 미국성경장로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그는, 세계적 보수신학의 교두보였던 훼이스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에서 M.Div.와 D.D. 그리고 Th.D.를 취득했다. 멕킨타이어 총장의 무리한 신학교 경영으로 파산하자 윤박사가 인수받은 상태. 보수정통신학의 계보를 잇기 위해 그는 틈나는대로 신학교 강단에서 각종 집회에서 자유주의신학과 다원주의경향을 단호히 거부하는 소신발언을 이어가는 중이다. 


평양신학교 출신인 증조부로부터 4대째 신앙을 잇고 있는 윤세웅목사 집안은 손주까지 6대 크리스찬 명문가문이다. 


Washington D.C., WTCN AM 950방송국 사주(2004)면서 New York Huntington, WNYH AM 740 사주(2005)이다. 복음전파를 향한 윤세웅 박사의 열정은 전파선교사로서 사명감으로 이어졌다. 


다수의 시집을 펴낸 시인으로 한국 ‘창조문학’ 수상으로 등단(2019)했다. 해외기독문학협회 고문, 회장(2022)이다. 


의사로 시작한 그의 인생은 60년 간 목사로 신학자로 방송사 사주, 문학인으로 거침없는 삶을 굵직하게 살아내고 있다. 자신에게 쏟아진 하나님의 은혜를 삶의 여러 영역과 분야에서 드러내고 있다.


윤영호 기자 yyh605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