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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성 뉴욕양무리장로교회 담임목사
본문 / 갈라디아서 1:6-10
서론
갈 1:8. 9절을 보시면 바울은 복음의 반대자들에게 저주를 퍼 붓습니다. 오늘날 이런 설교를 한다면 아!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칼은 뒤로 숨기고 친절하고 사랑으로 웃으면서 영적으로만 설교를 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WCC나 다원주의 그리고 신복음주의나 동성애 같은 복음의 반대자들에게 얼마나 관대한지 모릅니다. 대적자들에게 대한 적개심이나 불의에 대한 격분이 사라진 시대에 불법과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붙어서 물질적으로 타락으로 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영적 암흑기입니다.
성경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겔44:23) 하라고 강조하지만 우리는 이것마저도 구별 못하는 영적 암흑 도시 뉴욕에 살고 있습니다. 과연 크리스챤들이 분별하고 잘못됐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교만이나 잘못된 행위입니까?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했던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3:1)하고 책망합니다. 변질된 복음(v7)은 필연적인 저주가 뒤따릅니다. “가만히 들어 온 거짓 형제들”(갈2:4) “광명한 천사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탄” 글이라고 다 글이 아니고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니 반드시 분별해야 합니다.
본론 – 어떻게 변질 시켰는가?
(1)억지로 할례를 시키려 했습니다(2:3-5)
가만히 들어 온 거짓 형제들의 논리는 구원은 할례와 율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의 이름으로 자기 사적인 이익을 구하는 많은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보여주기식의 행정이나 글 또는 말과 행동은 우리들의 분별로 판단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의 대적자들에게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빌3:2)고 말합니다. 즉 복음의 배신자들을 개로 표현합니다. 한 번 배신한 자는 2번이 더 쉽습니다. 왜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당시 로마 황제들의 박해를 피하고, 육체로 자랑하기 위하여(v13)서 입니다. 그렇게도 자랑할 것이 없어서 또 우리 교회, 우리 목사님, 하면서 자랑하나요? 오직 예수 이름뿐이면 족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이신득의를 이행득의로 변질 시켰습니다(3:11)
갈 2:16-21에 보시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오직 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 뿐임을 철저히 가르칩니다. 갈3: 2-9 에서도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복음의 본질임을 강조합니다.
교회가 지역 사회에 대한 책임이 분명히 있습니다. 선한 일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야 하는 목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제는 반드시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이신득의가 뿌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 15:6에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강조합니다.
롬 1:17절에서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강조합니다. 참된 믿음이 무엇일까요? AD 50경 열렸던 예루살렘공의회(행15장)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는지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3)율법을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이라고 선언합니다(3:24. 4:9)
율법이 잘못되거나 나쁘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롬7:12에서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약하다고 표현 할까요? 그 의미는 “완벽하지 않다. 부족하다”는 의미이고, 천박하다는 의미는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인 궁핍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천박하다는 의미입니다. 상재적으로 우리 인간에게는 거룩하고 선하고 의롭고 신령하지만 절대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천박하기 때문에 몽학선생(후견인)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3.결론
율법을 오해하는 기독교는 하나님을 대적합니다(롬6:10-12). 많은 경우 바울이 언급하는 “죄와 사망의 법” 대신 “하나님의 율법”으로 오해하여 이해하면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참된 기독교는 결코 예수 안에서만 정죄함이 없을 뿐입니다(롬8:1).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복음은 던져버리고 정의와 인자와 겸손(미6:6-8)으로 행하며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참 자유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암 5:21-24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진실로 종교와 복음을 구별하고 행위는 은혜 받은 자들의 마땅한 하나님 사랑의 표현임을 알고 예수 이름으로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