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소 談笑

이 승 종 목사

 

어깨동무사역원 대표

기독교한인세계선교협의회 상임의장

 

담소는 “웃으며 나누는 대화”다. 오랜 시간 벼르다 한국에 ‘담소’의 방을 열었다. 모두가 힘든 때 임에도 잠실의 한 교회가 숙소와 강의실을 마련해주어서 고맙다. 담소의 시간은 오는 이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우물가’를 연상하며 시작한 일이다. 서로 삶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눔의 사랑방이 그리워서다.

지금의 교회는 강단의 선포는 있지만 대화가 메마른 곳이다. 교회 밖에서 보면 교회의 문지방, 문턱이 담벼락처럼 높다. 교회에 들어서는 일이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올 가을엔40여일 서울에 머물며 한국교회의 나침반을 판독하려고 노력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담소의 사랑방은 늦은 밤까지 연속이었다. 가슴을 열고 여러날 나눈 이야기들은 생각할수록 가슴이 따뜻해진다. 눈물이 고이고 숨어 울어야했던 시간도 많았다.  

젊은이들의 맑은 눈동자에서 한국교회의 밝은 내일을 확인하며 새벽을 밝힌 날이 여러 번이다. 연속적인 만남과 강의로 육신은 물에 젖은 헝겊처럼 피곤했지만 속마음은 감사로 가득했다.

올 가을 강의는 ‘뜻세움’이었다. 젊은 날의 뜻세움은 하늘 꿈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의미없이 무작정 살 수 없기에 깊이있게 배우고, 듣고, 마음에 새김질하는 시간이다. 소문없이 담소의 방을 열었지만 매번 아름아름 모이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사람들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잊거나 삼키지 못하고 토로하지 못한 응어리를 지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성급하게 소개하느라 오히려 마음에 생채기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칼바람 부는 아침에도 서울 시내뿐 아니라 타지역에 거주하는 대부분 젊은 세대 목회자들, 청년들, 그리고 해외에 흩어진 선교사들이 모였다. 열기가 느껴지는 담소의 시각이 늦밤까지 간다.

허투루 ‘기독교 인문학’ 이야기를 소개하기엔 우선 젊은이들의 꿈과 열기가 무척 뜨겁다. 올바른 정치로 한국의 미래를 꿈꾸는 청년, 허물어져가는 한국의 법 문화를 바로 세우기 원하는 법학도, 새로운 출구를 찾는 청년 창업자, 대한민국 정치 구도 개혁을 꿈꾸는 젊은 지도자, 한국교회 개혁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청년 사명자, 한국교회 미래를 책임질 젊은 목회자들, 한국교회 이대로는 시야가 불투명하기에 거듭난 목회를 다짐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목회자들이다. 힘든 목양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목양의 출구를 찾는다.  

가르침보다 저들을 더 깊이 품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에 울컥할 때가 있다. 교회가 담소의 현장이었으면 하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전통적인 예전과 제자훈련, 조직, 행정, 성장이 필요하지만 제자훈련만으로 세상의 급류를 마주하기는 어렵다. 세상 어디를 보아도 따뜻한 대화와 만남의 현장이 없다. 교회에 들어서면 예배당으로 들어가든지 교실 안으로 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잠시라도 숨을 고르며 생각할 수 있는 나무의자 하나 없다.

누구나 웃으며 만날 수 있는 ‘담소 예배’를 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꼭 불신자들을 위한 시간만이 아니다. 교회가 지나치게 일방적인 예배와 훈련에 몰두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성전의 뜰은 안뜰과 바깥뜰로 구분되어 있다. 성전의 안뜰은 유대인에게만, 바깥뜰은 모두에게 개방했다. 안뜰로 가기 위해서는 바깥뜰을 거쳐야 했다. 이 바깥뜰을 ‘이방인의 뜰’이라고 불렀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고대에는 이 뜰에서 율법을 토론하며 모이는 기능이 있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사 56:6-7)이라고 하셨을 때 이 말씀은 이방인을 염두에 두고 하셨다. 성전 안에 ‘이방인의 뜰’을 준비하신 하나님이시다. 아름다운 성전이 제사장들의 탐욕으로 더럽혀졌을 때 주님은 이른 아침 베다니에 오셔서 이방인의 뜰을 청결케 하셨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담소의 뜰이 필요하다.  신앙적인 이방인, 이방적인 신앙인 같은 세월을 살아가느라 안뜰에 들어서기엔 그만큼 담소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방인의 뜰’이 담소의 사랑방이 되었음 하는 마음에서 매번 책자를 만들어 강의를 했다. 사랑과 나눔, 담소의 시간이 되기를 힘썼다. 한달 반의 시간은 설교와 강의로 분주한 밤낮을 보냈으나 묻어둔 응어리를 풀어내는 담소의 자리와 시간을 가지려 했을 뿐이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먼 길에도 마음에 그간의 잔상이 남아서 감사했다. 

젊은 목회자들의 교회에서 설교하고 나눈 담소의 시간이 아름다웠다. 증거의 삶을 살려는 저들의 상한 마음과 함께 하고 싶었다. 아침 이슬 같은 청년들의 방문과 배움의 시간에서 목격한 청정한 눈빛이 지금도 눈에 선명하다. 담소의 시간을 그리워하면서 헤어질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예수가 유일한 해답’이라는 울림이다.

‘담소’의 시간과 공간은 소망의 골방이다. 생명이 살아나는 시간이다. 웃음과 울음이 하나될 수 있는 사랑방이다. 담소의 방이 여전히 그립다. 녹슬기 보다 닳아 없어져도 담소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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