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ON
뜻지킴
- K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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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 종 목사
시 인
어깨동무 사역원 대표
입지 立志는 ‘뜻을 세움’이며 지조 志操는 ‘뜻을 지킴’이다.
한 번뿐인 삶을 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인 삶의 품새를 말한다. 세상이 혼탁하면 지조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행패가 하늘을 찌른다. 거짓이 난무하고 불법이 성하며 배반 背反과 배신 背信으로 의리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
격동하는 세상은 치열한 경쟁터와 흡사하다. AI, SNS 담론장은 각자 도생의 원리가 지배하는 첨예한 개인주의 세태를 넓혀간다. 상대편을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신뢰의 관계는 무너지고 이웃없는 폐허 공동체가 되는 느낌이다. 풍요 지수가 높아지며 오히려 불신과 불안이 팽배한 세상이 아닌가 싶다.
국가의 질서와 안정은 지도자의 지조있는 리더십이 관건이다. 지도자가 지조를 잃으면 공동체는 배반과 배신의 집단최면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근거없는 거짓 소문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신앙 공동체인 교회는 말 할 것도 없다. 목회자의 소명의식은 지조없이는 불가능하다. 신앙인의 덕목 중에서 지조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지조는 소명, 부르심의 기둥과 같다.
지조는 뜻세움의 결연한 의지다.
지조는 미래를 함께 바라보는 뜻나눔이다.
지조는 양심이 머무는 최후의 보루다.
아무리 화려한 약속이라도 입지 立志, 처음의 뜻이 흔들리면 거짓과 배반의 상처만 남는다.
일찍이 동탁 조지훈이 선포한 ‘지조론’은 변절과 배반이 난무하는 시대를 깨우고 선도한 정신적 신문고였다. 지금도 그의 ‘지조론’은 그 울림의 여운이 깊다. 지조는 순결한 신념과 정신적 기개와 용기를 함유한다. 얼굴 두껍고 부끄러움 없는 후안무치한들이 거칠게 서성이면 모두가 세월의 암흑기를 견뎌야 한다.
성경의 가롯 유다는 은화 30에 스승을 팔아넘긴 배신자의 표상이다. 구한말 을사오적이었던 이완용은 나라를 일본에 팔아버린 매국노의 상징적 인물이 아닌가? 집현전의 천재 학자였으나 지조없는 변절의 대명사 같은 신숙주는 세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단종을 보필하라는 고명을 저버린 채 지조를 잃고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협력했던 인물이다.
지조를 생명처럼 여긴 성상문의 결기는 다르다. 죽음을 앞두고 형장을 향하며 읊은 저 유명한 절명시는 지금도 역사의 천둥소리처럼 가슴을 울린다. 그의 뜻지킴의 의연함과 충절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세태는 많이 변했다. 선죽교를 피로 적시며 지조를 잃지 않은 포은 정몽주의 정신을 희화하는 세상이 아닌가? 청춘을 민족의 제단에 던진 안중근의 민족 사랑과 거룩한 용기는 뜻지킴을 생명으로 여겼던 이유 뿐이다. 지조는 생명을 담보한 고백이기에 세월을 넘어서는 위대한 힘이다.
지조는 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결연한 정신이다. 지조란 처음의 결심과 약속을 생명처럼 여기는 정신적 자세다. 인격의 힘은 능력이 아니고 겸손과 진실이다.
사명자가 세상 저울대의 눈금을 곁눈질하는 것은 본래의 사명을 저버린 구차한 판단이다. 소명召命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엎드려 시작한 것이기에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지조는 전 인격을 담보한 생명의 씨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