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ON
소리의 장벽을 넘어 고국으로
- K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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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선 목사
주님의 식탁선교회 대표
세상의 온갖 소음이 잦아든 적막한 세상 속에서 홀로 이민생활의 세월을 견뎌온 김윤제 씨. 수많은 형제가 모여 사랑을 나누는 ‘주님의 식탁 선교회’에서, 고국으로 향하는 영구 귀국 프로그램의 서른아홉 번째 소중한 인연으로 그를 마주했습니다.
그는 깊은 난청으로 인해 동료들과 소통하지 못한 채, 늘 공동체의 가장자리에서 쓸쓸히 머물러야만 했습니다. 그 소외된 뒷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곁을 지키는 동안, 제 마음속엔 참으로 투박하면서도 진한 ‘미운 정 고운 정’이 켜켜이 쌓여갔습니다. ‘주님의 식탁’이라는 이름 아래 한 형제가 되어 다시 고국 땅을 밟게 되기까지, 그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늘 제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적시곤 했습니다.
선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자발적인 봉사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길 바랐지만, 닫힌 귀는 소통의 문마저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동료들 사이에서 마치 외딴섬처럼 지내는 그를 보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한 번 더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길을 안내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비록 투박한 표현이었을지라도, 가끔씩 배어 나오는 그의 따스하고 정 많은 행동들은 그가 여전히 세상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한다는 증거였습니다.
그토록 고국 땅을 밟고 싶어 했건만, 1999년에 멈춰버린 낡은 여권을 보았을 때의 그 막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서둘러 영사관의 문을 두드리고 11월 이동봉사를 통해 신청을 마쳤지만, 기다리던 여권은 해를 넘겨 1월에야 비로소 도착했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문을 두드린 ’21 희망재단(이사장 김준택)’은 기적 같은 통로가 되어주었습니다. 본래 2월이나 되어야 자리가 날 상황이었음에도, 김씨의 안타까운 사정을 혜량하여 주신 김준택 이사장의 특별한 배려 덕분에 1월 27일, 마침내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출발 당일 이른 새벽, 들리지 않는 그를 위해 저는 온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종이 위에 안내문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휠체어 서비스 신청을 해두었으니 걱정 마세요. 봉사자에게는 당신이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영어로 상세히 적어 전달했습니다. 이 종이를 보여 주면 친절하게 아시아나 비행기 안까지 당신을 평안히 인도해 줄 것입니다.”
또한 재단에서 후원해 주신 항공권 잔액을 챙겨전달하면서 다시 종이 위에 적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해 모든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고 정부 보조금이 나올 때까지, 이 돈으로 부디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지내십시오.”
인천공항 입구에서 당신의 이름 석 자가 적힌 팻말을 든 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안내와 함께, 여주 십자가 선교회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시라는 마지막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오늘 28일 새벽, 경기도 여주에 무사히 도착하여 정착하셨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영구 귀국 프로그램의 39번째 형제, 김윤제 씨. 소음 없는 고독한 시간을 견뎌온 그가 이제는 고국의 따스한 온기 속에서 평안하고 복된 여생을 보내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