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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 저자 송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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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교보문고
대기업 희망퇴직 뉴스가 연일 쏟아진다. 50대 중견 직원만이 아니다. 입사 1년 차 20대 신입사원까지 퇴직 대상이 됐다. 위기에 몰린 기업의 긴급 처방이 아니다. 잘나가는 대기업들이 상시적으로 조직을 줄인다. 이쯤 되면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다. 우리 사회 조직의 근본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송길영 작가가 신간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에서 이 현상의 본질을 짚어냈다. 20여 년간 사람들의 일상 기록을 관찰해온 ‘마인드 마이너’인 그는 핵개인, 호명사회에 이어 이번엔 조직 단위의 거대한 변화를 포착했다. 그 변화의 핵심은 명확하다. 거대함은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가볍고 빠른 것만이 살아남는다.
모든 이가 일상을 함께하고 공동체 중심으로 생산하던 무거운 문명이 저문다. 송 작가는 이를 ‘중량문명’의 종말로 규정한다. 대신 저마다의 지혜가 인공지능과 결합하고, 작은 모둠으로도 큰 진보를 만드는 새로운 문명이 시작됐다. 그가 명명한 ‘경량문명’이다.
경량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물리적 인프라의 제약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통신망이 없어도, 기간 설비가 부족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선진국을 따라가는 ‘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는 ‘빠른 전환자’의 시대가 열렸다. 누구나, 어디서나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변화는 한국 사회에 특별한 딜레마를 안겼다. 빨리빨리 문화로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인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투잡을 뛰며 경쟁력을 유지해온 이들조차 인공지능의 속도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가속이 미덕이던 시대에서 인간의 속도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송 작가는 경량문명의 조직 원리를 명확히 제시한다. 적은 수의 구성원이 기술로 증강돼 스스로 완결성을 가진 일을 수행한다. 지능화와 투명성으로 무장한 조직에서는 음영이 생길 수 없다. 모든 이가 자신의 결과를 공개하고 책임진다. 문제의식과 직업의식을 가진 소수가 자발적 의지로 극단의 효율을 낸다. 감시와 관리라는 중량문명의 시스템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 산업의 경쟁력 구조도 재편된다. 부품 공급자에서 브랜드 보유국으로 거듭나는 데 필요했던 오랜 시간의 궁리, 제품 위에 놓인 상징과 서사가 이제 개인 단위까지 분화된다. 브랜드의 주체가 국가에서 기업으로, 기업에서 개인으로 내려간다. 가벼워진 생산과 긴밀해진 커뮤니케이션이 새로운 협업 방식을 만든다.
송 작가는 경량이 단순히 무게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가치 체계의 재구성이고 관계 방식의 혁신이다. 무엇보다 지속 가능성을 향한 설계다. 더 적게 소유하고도 더 넓게 연결되는 삶, 덜 복잡하지만 더 깊이 있는 질서, 서로에게 덜 바라며 더 위하는 자세가 경량문명의 언어다.
그는 장거리 비행의 기내식 비유로 이 변화를 설명한다. 출발지가 아닌 도착지 시간을 기준으로 제공되는 식사처럼, 경량문명을 살아갈 이들은 지금이 아닌 미래의 리듬에 몸과 마음을 맞춘다. 현재의 피로는 새로운 시간 감각을 익히는 적응 과정이다.
기술이 구조를 가볍게 만들고, 인간의 지혜가 의미를 더한다. 무거운 세계의 질곡을 넘어 가벼운 문명으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됐다. 거대 조직에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다. 가볍고 빠르게 적응하는 개인과 소규모 조직만이 살아남는 시대, 경량문명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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