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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인 ‘집도 못 구하고 택시도 못 타’…분노가 혐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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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망고단지의 기숙사 뒤편=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납치·살해 사건의 충격파가 무고한 사람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범죄조직에 대한 분노가 캄보디아 전체에 대한 혐오로 확산되면서, 현지 교민과 국내 거주 캄보디아인들이 이중 피해를 겪고 있다. 특정 범죄자들의 악행이 한 국가 전체를 범죄국가로 낙인찍는 일반화의 오류가 현실이 됐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캄보디아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들이 확산되고 있다. “캄보디아에 가면 납치돼 마약 투여되고 결국 암매장당한다”, “캄보디아 전체 GDP 절반이 범죄수익”이라는 등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사실처럼 퍼지는 상황이다. 캄보디아인 전체를 향한 “한국인을 돈으로 보고 물건 취급한다”
서울에서 7년째 거주 중인 캄보디아인 A씨는 “범죄는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가짜뉴스와 악성 댓글 때문에 정말 상처를 많이 받았다”며 “한국은 너무 좋은 나라인데 이런 일이 생겨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직장인 노모씨는 “앙코르와트로 유명해 가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며 “현지 치안 상황을 알 수 없어 불안하다”고 전했다. 유모씨는 “최근 사건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며 “비단 캄보디아뿐 아니라 동남아 전체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교민들 사업 취소에 단톡방도 비상
“집주인이 거부, 택시 기사는 욕부터”
전문가들 “일반화의 오류, 정부 투명한 정보 공개해야”
혐오 여론의 일차적 피해는 현지 교민들이 겪고 있다. 캄보디아에 16년째 살며 교육업을 하는 강모씨는 “여행사는 골프 여행 예약이 줄줄이 취소됐고, 한국에서 건설 투자를 하겠다며 오기로 해놓고 취소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교민 단톡방에도 선량한 교민을 범죄자로 몰아가며 불안을 조성하는 사람들이 생겨 비상이 걸렸다”고 덧붙였다.
온라인상에는 “교민도 한패다”, “스파이가 있다”는 식의 근거 없는 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캄보디아에 오랜 기간 거주하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던 한국인 B씨는 최근 쏟아지는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채널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B씨는 “캄보디아 이슈에 대한 혐오가 교민과 현지인, 채널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돼 무분별한 댓글이 달리고 있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8년째 거주 중인 캄보디아 한인회 부회장 이모씨는 “한인회가 구조를 도왔던 사례 중에는 고액을 준다는 미심쩍은 일자리인 줄 알고도 스스로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며 “힘들게 탈출해 한국에 돌아가도 재입국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몇몇 범죄 사례가 캄보디아 전체 이미지로 확대 재생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한국 정부가 사전 관리와 사후 처벌을 강화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캄보디아인도 국적을 드러내는 순간 부정적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 11년 전 한국에 입국해 현재 캄보디아인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한다는 소르 소켐씨는 “집을 구하려고 해도 캄보디아 사람인 것을 알게 되면 집주인이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택시 기사들도 캄보디아 사람인 것을 알면 욕부터 하고 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5년째 살고 있는 캄보디아인 D씨는 “이번 사건으로 캄보디아 전체가 위험한 나라로 이야기되고 있어 한국에 사는 많은 캄보디아인이 큰 불안과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캄보디아인들 모두 한국을 좋아하고 이곳에서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데 차별을 경험하게 되는 건 정말 가슴 아프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특정 개인의 사례가 집단 전체에 대한 혐오로 불거지는 부당한 낙인찍기라고 지적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미국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벌인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당시 현지 한국인들이 큰 위협과 두려움을 느꼈다”며 “소수의 캄보디아인이 저지른 범죄를 이유로 성실히 살아가는 다수의 캄보디아인까지 혐오하는 건 일반화의 오류로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민학회장을 지낸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범죄 조직을 소탕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범죄에 연루되지 않은 캄보디아 국민과 캄보디아 나라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혐오 정서는 한 번 만들어지면 바뀌기가 어렵다”며 “완벽하지 않더라도 당국이 즉각 어떤 조치를 취했고, 캄보디아 쪽에서는 어떤 답이 왔다는 등의 과정을 계속해서 국민에게 제시해야 혐오 정서가 더 깊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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