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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26 – 저자 김난도, 전미영, 최지혜, 권정윤, 한다혜 저 외 7명

트랜드 코리아 2026-도서
사진출처=교보문고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벌어진 지 10년, 2026년 대한민국은 인공지능이 모든 산업과 일상을 뒤덮는 대전환의 한가운데 서 있다. 관세전쟁과 끝없는 글로벌 분쟁 속에서도 K뷰티와 K콘텐츠는 세계 시장을 장악하며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창작까지 가능해진 이 시대에, 인간은 과연 어디에 서야 하는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난도를 비롯한 트렌드코리아 연구팀이 18년째 펴내는 ‘트렌드코리아 2026’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2026년의 키워드는 단순히 AI와 인간의 대립이 아니라, 그 갈등 속에서 합일하는 새로운 변증법적 질서다. 연구팀은 이를 그리스 신화 속 반인반마 ‘켄타우로스’에 비유한다. 상체는 인간, 하체는 말인 켄타우로스처럼, AI의 압도적 능력과 인간 고유의 역량이 완벽히 결합될 때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진짜 승자는깊이 사유하는 인간 거대 서사의 종말

마이크로 트렌드가 세상을 지배하다

가격표는 이상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로 변했다

책이 제시하는 2026년 10대 트렌드 중 첫 번째는 ‘휴먼인더루프’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인간의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AI는 이전 컴퓨터 기술과 질적으로 다르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초안을 생성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AI가 더 똑똑해질수록 인간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AI의 압도적 계산 능력과 인간의 비판적 사고, 윤리적 판단력, 맥락을 이해하는 지혜가 결합될 때 비로소 기술을 안전하고 이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기계를 가진 자가 아니라, 그 기계 위에서 가장 깊이 사유하고 현명한 질문을 던지는 인간이 될 것이다.

AI의 영향은 산업 경계를 빠르게 허문다. 2026년에는 자동차와 에너지, 금융과 헬스케어처럼 표면적으로 거리가 있어 보이는 업종 간에도 기술과 데이터를 매개로 한 융합 협력이 늘어날 전망이다. 초협력 시대의 성공 조건은 명확하다. 열린 마음으로 협력하고, 소비자를 공동 창작자로 인정하며, 기술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경쟁에서 협력으로, 소유에서 경험으로, 차가운 기술에서 따뜻한 기술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AI가 일상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소비 패턴도 변화하고 있다. 챗GPT나 제미나이를 직접 사용하지 않더라도, 앱으로 쇼핑하거나 케이블TV를 시청하면 이미 AI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AI 서비스가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클릭을 줄이는 일’이다. 예전에는 검색어를 넣고 링크를 클릭한 후 원하는 정보를 찾아 다시 여러 차례 클릭해야 했지만, 이제는 AI 검색창에 친구에게 말하듯 물어보면 정확한 답을 내놓는다. 이른바 ‘제로클릭’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편 예측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는 신세대에게는 새로운 생존 방식이 필요하다. 불확실성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대신, 기본적인 대비와 예행연습을 통해 미래의 경험을 현재로 소환해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해졌다. 미리 계획하고 학습하며 살아보려는 트렌드, ‘레디코어’가 부상한다. 준비된 상태가 삶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이다. 청년 취업난과 경제 불황이 심화되고, 생성형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기존 일자리마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현실을 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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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거대 서사의 종말’이다. 2025년 7월 유튜브가 인기 급상승 동영상 페이지를 폐지한 것이 상징적이다. 각기 다른 팬덤이 만든 영상과 마이크로 트렌드가 플랫폼 전반에 퍼지면서 종합적인 인기 영상 목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탕후루와 두바이 초콜릿 열풍이 채 식기도 전에 새로운 디저트가 소셜미디어를 뒤덮고, 패션 스타일이 한 계절도 지나지 않아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메가 트렌드는 힘을 잃고, 그 자리를 무수히 많은 마이크로 트렌드가 대체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의식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 브랜드가 제시하는 가격표는 마침표와 같았다. 브랜드의 최종적인 가치 선언이자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는 대화의 끝이었다. 하지만 이제 가격표는 물음표로 변했다. 100만 원짜리 가격표는 더 이상 “이것의 가치는 100만 원이다”라는 단언이 아니라, 소비자로부터 시작되는 수많은 질문의 출발점이다. 왜 100만 원인지, 소재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지, 브랜드 스토리가 정말 그만한 프리미엄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묻는다. 소비는 브랜드의 일방적인 독백이 아니라, 브랜드와 소비자가 함께 가치를 검증하고 합의해가는 대화가 되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도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 모든 비즈니스는 건강 비즈니스가 됐다. 건강관리가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지향이자 라이프스타일이 되면서 의료, 보건 영역뿐만 아니라 가전, 주거, 패션, 여행, 금융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건강 관련 요소를 담아내야 한다. 식품 시장에서는 이미 구조적 변화가 진행 중이다. 설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오렌지 주스와 시리얼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기업들은 고단백 저당 그래놀라나 뮤즐리 같은 건강 시리얼로 방향을 전환했다.

가족과 가구의 형태도 재정의되고 있다. 혈연으로 묶인 가족과 완벽히 독립된 1인이라는 낡은 이분법으로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가구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혼자인 동시에 함께이고, 함께이면서도 혼자인 새로운 관계 맺음의 방식을 ‘1.5가구’라고 부른다. 1은 개인으로서의 오롯한 자율성을, 0.5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연결감을 의미한다. 좋은 관계는 자율성과 연결감을 함께 만족시키며, 두 축이 동시에 충족될 때 웰빙 수준이 가장 높다.

디지털과 AI가 세상을 호령하는 지금, 사람들이 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리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AI가 만든 가상이 진짜를 위협하고 진위의 경계를 허무는 시대의 반작용이다. AI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근본을 직접 보고 싶다는 열망이 작용한 결과다. 생성형 AI가 복제는 물론 창조까지 자유롭게 해내면서 무엇을 믿고 어디에 가치를 둬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근본을 찾을 수 있는 순정의 진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증기기관이나 컴퓨터의 도입에 맞먹는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 AI는 우리 모두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기업에게는 구성원들을 신뢰하고 통제의 유혹을 내려놓은 채 그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줄 준비가 됐는지 묻는다. 개인에게는 회사가 깔아준 레일 위를 달리던 관성에서 벗어나 불확실한 광야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개척해나가는 탐험가가 될 준비가 됐는지 묻는다.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21세기의 문맹자는 글을 읽고 쓸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하고 폐기하고 재학습할 수 없는 사람이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본질은 아니다. 2026년 대한민국은 AI와 인간이 만드는 켄타우로스의 시대로 항해를 이어간다.

K굿뉴스  kgoodn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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