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카렌다 앞에 서서

노 재 화 목사

 

전 성결대학교 학장

 

12월의 세모(歲暮)가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늘 벽에 걸린 마지막 남은 마지막 한 장의 카렌다에 눈이 자꾸 자꾸 가게된다. 왜 그럴까! 신년초에는 친구처럼 붙어있던 묵직한 12장이 우리가 지나온 열 두 달의 무게라면 이제 마지막 한 장은 쓸쓸함과 고요함을 품고 있는 듯하다. 오늘 우리는 이 마지막 장 앞에서, 하나님의 시계 안에서 흘러간 나의 일 년,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를 함께 묵상하고자 해보자.

첫째로 하나님의 시계는 결코 틀리지 않다. 전도서 3:1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올해는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갔나?”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벌써 끝나가네.” “나는 늦었는데, 다른 사람은 너무 앞서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계는 인간의 시계와 다르다. 하나님은 한 번도 급하거나 지체된 적이 없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폴 자네가 주장한 ‘시간의 수축효과’에 따라 인간의 나이 연대별로 60마일이네, 70마일이네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금’을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전체’를 보신다. 우리가 조급해했던 순간, 우리가 늦었다고 느꼈던 순간, 우리가 답답해하며 “왜 아직입니까?”라고 물었던 순간들이 지금 뒤돌아보면 하나님이 가장 정확한 시간에 일하셨던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시계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그 시계에 맞출 줄을 자꾸 잊을 뿐이 아닌가 싶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날을 기록하신다. 시편 139:16에 “나의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의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기록되었나이다.”라고…올해 우리의 삶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기쁨의 날도 있었고, 눈물의 날도 있었고, 기대한 것과 다른 일이 벌어진 날도 있었고, 하나님께 차마 말하지 못할 연약함이 드러난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의 모든 날이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우리는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고…우리는 사소했다고 생각한 행동도, 하나님은 귀하게 기록하신다.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시간도, 하나님은 그 속에 뜻을 새겨두셨다. 올 한 해의 기록 속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하나님의 발자국이 곳곳에 찍혀 있었다. 우리는 단지 그 흔적을 나중에사 발견했을 뿐이다. 

셋째로,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신앙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우리는 흔히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고, 어려운 일에는 감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여기서 “범사(凡事)”란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이다.

감사는 감정이 아니라 믿음의 태도이다. 감사는 결과가 아니라 관점이다. 감사는 성공 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할 때 드려지는 예배이다. 올해 우리가 겪은 사건 중 우리가 감사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일들이 하나님의 때를 준비하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되지 않았는가. 우리의 시계는 지금만 보지만 하나님의 시계는 끝을 보며 시간의 의미를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 

넷째로 연약함이 드러날 때, 하나님의 능력은 더욱 빛난다. 고린도후서 12:9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의 연약함이 적지 않았다. 믿음이 흔들린 순간도 있었고, 지치고 낙심해 기도조차 나오지 않는 밤도 있었으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와 싸운 날도, 눈물로 베갯잇을 적실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 위에서 가장 뚜렷하게 빛나고 있다. 힘이 없을 때 하나님이 대신 붙들어 주셨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주님이 안내판이 되어주셨고, 사람이 위로해주지 못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위로자가 되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자리였다. 우리가 무너진 자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세우는 자리가 되지 않았는가. 

다섯째로, 그래서 내년에는 태양빛을 필요로 하는 해바라기나 광합성 작용 식물처럼, 하나님의 시계에 맞추어 살아갈 결단을 하고 싶다. 잠언 16:9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새로운 한 해가 다가오고 있다.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새 카렌다는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하는 것을 막지 않으신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계획의 방향은 우리 것이지만, 걸음의 성공은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새해에는 이렇게 결단해야 한다. 하나님보다 앞서 가지 않겠다고… 하나님보다 늦게 따라가지도 않겠다고… 하나님의 시계가 울릴 때 움직이겠다고… 멈추라는 신호가 오면 겸손히 멈추겠다고… 기다릴 때에는 불평이 아니라 기도로 기다리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내년은 내 의지에 따라 내가 이끄는 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해가 되어야 할 것이 믿음이요 신앙이다. 

마지막 잎새처럼 희망을 가지고 마지막 카렌다 앞에서 기도드리고 싶다. “주님,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마지막 잎새의 희망으로 이 해 동안 저를 지켜주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흔들린 날에도 붙드시고, 넘어질 때 다시 세워주셨습니다. 제가 감사하지 못했던 순간에도 주님은 일하고 계셨음을 고백합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시계에 제 발걸음을 맞추게 하소서. 앞서가지 않게 하시고, 뒤처지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머무르게 하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는 한 해, 주님을 더 깊이 신뢰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 카렌다는 끝이 아니라 은혜의 마침표였다는 것을…그리고 동시에 새 은혜가 시작되는 문턱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시계를 신뢰할 때, 우리의 시간은 실패가 아니라 배움이 되고, 고통은 방황이 아니라 성숙이 되며, 흔들림은 낙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올 한 해를 감사로 마무리하며,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새해를 믿음으로 맞이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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