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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에 대하여,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 저자 문형배

호의에 대하여- 문형배 에세이
이미지=교보문고

2025년 4월 18일, 한 재판관의 6년 헌법재판관 임기가 조용히 막을 내렸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의 퇴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30년을 법정에서 보낸 그가 1998년부터 차곡차곡 모아온 1,500여 편의 기록 중 120편을 엄선해 책 한 권으로 펴냈기 때문이다. 제목은 호의에 대하여. 법관이 아닌 한 대한국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30년의 답변이다.

법관의 입장으로는 파격이었다.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 말하고, 나무와 산책길에서 발견한 의미를 기록하고, 자살을 시도한 범인에게 “당신이 떠나면 당신을 붙잡지 못한 미안함에 며칠을 울어야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한 그. 그의 생각을 만나기 위해 책장을 넘어야 한다.

나무를 닮은 사람들, 평범함의 가치를 깨닫다
독서로 무경험을 극복하고 타인의 삶을 헤아리다
호의가 만드는 변화: 분쟁을 화해로, 절망을 희망으로

왜 같은 범행을 반복하는가. 계약서 없이 거액 거래가 가능한가. 사건과 사람을 이해하기엔 경험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결핍을 채운 것은 책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부터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까지, 40년간의 독서는 분쟁 속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창이 되고, 각 사안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소신을 갖추게 해주었다.

판사란 타인의 인생에, 특히 극적인 순간에 관여하는 사람이기에 충분한 이해와 풍부한 경험이 없으면 오판의 위험이 있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그의 통찰은 깊다.

피고의 입장에 귀 기울이면서 원고에게는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도록 제안하는 방식. 녹차 한 잔과 낡은 우산 한 개의 힘이 어떤 큰 금전적 이득보다 컸던 순간들이 있다. 호의를 담은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녹이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방지할 수 있다는 깨달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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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장 유명한 판결도 호의가 바탕이었다. 자살을 계획하고 여관에 불을 지른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쳐보라 했다. “자살자살자살”을 반복하면 발음이 흐려져 “살자”로 들린다는 시각의 전환. 그것은 절망 속의 누군가에게 생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메시지였다. 화이트칼라 범죄에는 엄정했지만 사회적 약자에게는 상담과 치료 프로그램을 이행하게 해 그 결과를 양형에 반영했던 그의 법정은 따뜻함으로도 단호했다.

형사재판 중 단 한 번도 사형 선고를 하지 않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생명의 경중을 누가 결정할 수 있느냐는 물음 앞에서, 그는 어떤 극악의 범죄 앞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판결을 내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작은 호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30년간 목격하고 증명해온 그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주위에 불행한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호의야말로 이 사회를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이다.

책 호의에 대하여는 평범함을 지켜온 한 법관의 삶의 기록이자,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성찰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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