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독립 만세운동과 성경적 자유

노 재 화 목사

 

전 성결대학교 학장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조국의 강토가 강제 병합된지 10년이 되던 해, 1919년 3월 1일, 정오에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 33인(기독교 17인, 천도교 14인, 불교 2인)은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고 독립선언서를 온 천하에 낭독하였고, 조선의 전역에서는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 외침은 항일에 대한 단순한 정치적 저항이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 속에서 침묵하던 한 민족이 스스로를 역사 앞에 세운 각성의 사건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적 지배에 맞서 무기를 들지 않고, 비폭력의 방식으로 존엄을 외쳤다는 점에서 이 운동은 깊은 도덕적 힘을 지녔던 것이다. 성경은 자유를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존재의 회복으로 말한다. 예수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선언하셨다. 3·1운동은 바로 이 말씀처럼, 민족이 스스로의 진실—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케 한 대사건이었다. 

또한 식민지 근대화의 허구와 인간 존엄의 신학으로 보면,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병합한 이후 근대화와 문명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철도와 산업, 제도의 정비를 강조했지만, 그것은 제국의 효율을 위한 수단에 동원되었을 뿐 조선 민중의 삶과 존엄을 위한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토지조사 사업은 농민을 어머니와 같은 땅에서 쫓아냈고, 산업화는 사람을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학자들의 주장이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로 이해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 1:27).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을 수단화하고 존엄을 말살하는 어떤 체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처럼 3·1운동은 식민지 근대화의 허구를 꿰뚫고, 인간과 민족의 존엄이 모든 발전의 전제임을 선언한 역사적 증언이었다고 평가한다.

여기서 또 중요한 점은 비폭력과 전 민족적 참여라는 부분이다. 복음의 방식으로 3·1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비폭력과 전 민족적 참여였다. 학생과 지식인, 농민과 상인, 종교인과 여성,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계층과 지역을 초월한 참여는 독립이 특정 지도자의 과제가 아니라 공동의 책임임을 보여주었다.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의 지혈사>에 의하면 만세 사건은 1,542회의 전국집회가 있었다. 당시 인구의 약 10%에 해당하는 200여만명의 참가자와, 사망자 7,509명과 부상자 15,961명의 인적 피해, 46,948명의 투옥 등이었다. 그러나 비폭력의 방식은 복음의 정신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예수께서는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라”(마 26:52) 고 말씀하셨다. 3·1운동은 증오로 맞서는 대신, 정의와 진실을 드러내는 길을 택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독립운동의 도덕적 정당성을 강화했고, 이후 중국의 5.4운동과 같은 세계 여러 민족해방운동에도 깊은 울림을 주었던 틀림없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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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기 3·1운동을 계기로 하여 임시정부와 공화국이 탄생되었다는 점이다. 정의의 국가가 비전인 3·1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비록 망명정부의 한계 속에 있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공화정 체제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는 왕조 중심의 질서에서 국민 주권의 나라로 나아간 사상적 대전환이었다.

성경은 정의로운 공동체의 비전을 분명히 제시한다.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는 단지 일본으로부터 벗어난 나라가 아니라, 정의와 공의가 살아 숨 쉬는 공동체였다.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세계사 속의 3·1운동과 약한 자의 희망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였다. 민족자결주의가 제기되었지만, 국제 질서는 여전히 자연법에 따른 양육강식의 강대국 중심이었다. 그럼에도 3·1운동은 세계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조선 민족의 존재와 독립 의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성경은 언제나 약자의 편에서 역사를 해석한다. “여호와는 압제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시 9:9).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는 강대국의 정치·경제적 압박 속에 고통받는 민족들이 있다. 3·1운동은 이들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증언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변부에서 울부짖는 자들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끝으로 신앙인의 과제인 3·1운동은 107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는 그 정신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독립은 정치적 주권 회복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경제적 종속, 문화적 사대주의, 사회 내부의 차별과 혐오 역시 새로운 형태의 속박일 수 있다. 이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책임이며, 타인의 존엄을 지키는 실천으로 증명된다. 3·1운동의 정신은 오늘 우리에게도 사회적 약자를 향한 연대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1945년 민족해방과 더불어 민족 분단의 고착화로 이어진 동족 상잔의 6.25와 휴전 국가, 그리고 산업화는 이루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국민의 의식은 요원하고 본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갈 5:1)라고.

이제 기억을 넘어 신앙적 실천으로서의 3·1운동은 과거의 기념일이 아니라, 오늘을 비추는 신앙적·역사적 거울이며 오늘의 외침이다.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 존재로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자유를 이웃과 나누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107년 전 울려 퍼진 만세의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희는 지금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자유를 증언하고 있는가?”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지 독립의 기억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자유와 정의를 이 땅에서 살아 내라는 지속적인 소명이 아닐까 머리숙여 묵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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